CHAPTER 1

노란색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레몬나무 밑에서 제노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에 휩싸인 것들 뿐이었다. 어딘가에서 권총의 소리가 메아리치는 듯이 들리는 듯했다. 그 생각을 털어내고 다시 눈을 뜨자 아침 일상이 이어졌다. 태양은 곧 떠오르고, 다시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여섯 시 삼십 분이 지나버렸고, 만약 아침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다시 침대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어둠 속에서 지나친 것들이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마치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있는 듯했다. 따뜻한 이불 사이로 환한 태양빛이 그녀를 감쌌다. 알림 소리가 울렸다, 6시. 슬슬 일어나 남편을 볼 시간이었다.

고개를 돌려 남편을 본 제노비아는 그 기묘한 장치에 갇혀 있는 루이즈의 모습에서 왜곡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기계 위에 새겨진 숫자들은 그가 숨을 쉴 때마다 미묘하게 변하며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그 장면이 너무나도 평범하게 느껴졌다는 사실이었다. 누가 이런 광경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것은 분명 광기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렇게 서 있었다. 아무도 믿지 않을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품은 채로. 이 모든 걸 생각하며 그는 문득 왜 이 사람들을 이전에 보지 못했는지 궁금해졌다—지금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내 자신이 그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뒷 마당의 아주 신 레몬 나무를 수확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ㅡ각주: 레몬은 미국의 속어로 "쓸모 없는 것"을 뜻한다.ㅡ

CHAPTER 2

그녀는 아침 일과를 시작했다. 따뜻하고 촉촉한 수건으로 루이즈의 얼굴을 부드럽게 닦아주며 아침 인사와 사랑의 말을 속삭였다. "좋은 아침," 그녀가 침대에서 물러서며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햇빛이 제대로 내려오기 전에 그가 깰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동안 일어난 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라웠다. 아니, 아마도 그동안의 모든 일 때문에 오히려 사랑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문 옆에 걸려 있던 레몬색 실크 가운을 걸치고 주방으로 향했다. 항상 그를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잊은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제노비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인 노란색으로 꾸며진 주방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계란, 우유, 소화가 잘 되는 통밀가루와 레몬즙.. 설탕 조금. 아침이니 소화가 안 될 것은 뻔했다. 그녀는 익숙한 손길로 계란을 깨고, 계란의 비린내를 살짝 날리기 위한 레몬즙을 짜고, 우유와 밀가루—설탕을 넣어 반죽을 만들었다. 제노비아는 노란 반죽을 주철 팬에 붓자, 반죽이 뜨거운 팬의 표면에 퍼져나가며 작은 물방울들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을 조절하고, 반죽이 익어가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잠시 후, 반죽의 가장자리가 살짝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작은 주걱으로 가장자리를 들어올렸다. "딱 좋군," 그녀가 혼잣말하며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이 순간을 사랑했다. 매일 아침 같은 리듬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느꼈다.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는 단순한 행복이 항상 하루를 밝게 해주었다. 반죽이 익는 동안, 그녀는 냉장고에서 신선한 과일을 꺼내 깨끗이 씻었다. 사과와 바나나를 작게 썰어 약간의 설탕을 뿌렸다. "이제 다 됐을 거야," 그녀가 말하며 팬으로 돌아가 반죽을 뒤집었다. 황금빛으로 익은 면이 드러나고, 고소한 향기가 부엌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침착하게 그것들을 그릇에 담기 시작하며 아침의 여유로운 속도를 즐겼다. 아침의 가장 좋은 점은 그 단순함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 사는 것을 선호했다. 이런 평화로운 순간을 방해받지 않고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람들을 좋아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꼭 필요하진 않았다—아직은. 그녀는 자유로웠다.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여보, 일어나."

그의 눈이 천천히 열리며 방을 둘러보았다.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다 제노비아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루이즈는 몸을 쭉 펴고 크게 하품하며 두 눈을 깜빡였다. 그는 그녀에게 입맞춤을 원하는 눈빛을 보내며 속삭였다. “당신.. 늦었어.” 그러고는 조용히 웃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고통이나 불편함의 기색이 없었다. 제노비아는 마치 완벽하게 편안한 일상의 한 조각을 즐기는 것처럼, 루이즈의 옆에 앉아 그의 입에 과일 팬케이크를 넣었다.

CHAPTER 3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자, 열 시 삼십 분에 초인종이 울렸다. "아마 또 언론사일 거야," 그녀가 루이즈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세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곧바로 앞으로 나서며 자신은 ABC 뉴스의 기자라고 소개했다.

몇 마디의 인사를 나눈 후, 그는 제노비아에게 루이즈를 얼마나 오래 알고 있었는지 물었다. 제노비아는 남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남편은 제가 예전 프로젝트를 집필하고 있을 때, 어느 교수님의 추천으로 만났어요." 이 대답에 남자는 활짝 웃으며 제노비아의 작업 습관, 글쓰기 스타일, 좋아하는 음식과 음료, 담배 브랜드 등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의 질문 하나하나가 제노비아의 심장을 움켜잡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루이즈에 대한 사랑과 그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뒤엉키며, 언론의 관심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제노비아 씨, 당신의 글을 읽다 보면 생각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기자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질문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완전히 지쳐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질문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기자들은 자리를 떠났다.

제노비아는 지친 몸을 이끌며 루이즈에게 다가갔다. “기자들이 너의 사진을 수없이 찍었어. 내가 그들을 막으려고 했어야 했나? “아니,” 루이즈가 대답했다. “그건 오히려 그들에게 불을 지필 뿐이야.” 루이즈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머리를 세 번 흔들었다. 자신이 읽을 책을 가져오라는 의미로. “내 질문이 너를 괴롭혔다면 미안해.” 제노비아가 책을 가져오며 말했다. 그녀는 책을 행거 위에 걸고ㅡ기기 안에 있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루이즈를 위한 제노비아의 작은 선물이였다. 작은 막대 하나가 걸려있었는데, 이것을 입으로 당기면 책 한장을 넘겼다.ㅡ 루이즈가 말한 것에 대해서 생각에 빠졌다.

'맞는 말이야. 내가 하지 말라고 했다면 그들은 더욱 열정적이게 이상한 기사를 써 내리겠지. 그들의 나무에 걸려있는 과실을 더욱 크게 키우는 셈이 될테니까. 커다란 레몬은 아무도 먹지 않겠지. 커다란 오해는 아무도 풀려고 하지 않을테고.' 그녀는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루이즈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그건 전혀 너의 잘못이 아니야. 내 잘못이지. 너는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 거야.” 루이즈가 마저 말했다.

“당신은 너무 겸손해. 당신은 예전에는 담배를 피웠다고 말해줬어. 하지만 지금은 오직 글쓰기 하나만 남기고 모든 것을 포기했잖아. 그렇게 자유로운 습관을 왜 포기했어?”

“음..” 그녀가 대답했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 그것도 있고... 주로 최고의 책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건 담배 같은 나쁜 습관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지. 나는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건강을 유지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완전히 담배를 끊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 제노비아는 그 앞에 서서 그의 얼굴을 외우려는 듯 바라보았다.

제노비아가 그를 바라보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익숙한 회색빛 파란 눈동자를 보며 다시 울고 싶었다.
아니, 소리치고 싶거나 웃고 싶기도 했다 .
어쩌면 둘 다.

CHAPTER 4

'루이즈가 그 장치 안에 영원히 머물렀으면 좋겠어.' 제노비아는 생각했다. 그녀는 손을 들어 루이즈의 뺨을 쓰다듬으려 했고, 그러다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녀는 동작을 멈추고,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말았다. 그러고는 두 손이 통제할 수 없이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떨림은 그녀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녀는 나중에야 그 떨림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몇 초 후, 그녀는 다시 자신의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제노비아는 이상한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자라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레몬이 그녀의 머리 속에 굴러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제노비아는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 그 레몬 하나를 집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많은 책을 쓴 작가가 레몬에 대한 갈망을 느끼는 게 웃기지 않나? 이게 어떤 병이란 말인가? 그녀가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는 증상일까?

“괜찮아?” 루이즈가 물었다. “물론이지,” 제노비아가 대답했다. “안 괜찮을리가 없잖아? 책 읽으면서 쉬고 있어. 내가 어제 하던 작업을 마저 해야 될 것 같아." 그녀는 방의 구석으로 걸어갔다. 책상에 앉아 종이를 펼치고, 깃털 펜에 잉크를 묻혔다.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면서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레몬이, 과실이 점점 더 커지는 듯했다. 그녀는 잉크처럼 스며드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여러 가지 단어가 떠올랐지만, 어느 것도 제대로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은 계속 그 이상한 생각으로 돌아갔다. 예를 들어, 햇살이 아름답게 비치는 날 어린아이가 설탕물에 레몬 즙을 짜는 것처럼. 레몬 즙이 물과 섞여 이상한 소용돌이가 비칠 때, 그것이 마치 그녀가 루이즈에게 느끼는 생각과 같았다.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하지만 그 레몬과 같은 생각은 달콤해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전혀 다른 것을 떠올리게 했다. 레몬은 신맛, 쓴맛, 시큼한 맛, 거칠고 불쾌한 맛이었다.

CHAPTER 5

시간이 흐르고, 백옥처럼 하얀 달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며 하늘을 수놓았다. 제노비아는 그 커져버린 생각을 지우기 위해 좌우로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커튼을 내렸다. “아, 드디어... 글의 콘셉트를 완성 했어. 루이즈, 얼굴 마사지를 해줄까?” 제노비아가 말했다. "여보가 해주는 거라면 뭐든지 좋아." 루이즈가 웃으며 대답했다.

누군가의 뺨을 마사지하는 생각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제노비아는 시도해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그의 피부에 손바닥을 부드럽게 대고, 천천히 손가락을 그의 근육 위로 움직였다. 밖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그녀의 손끝 아래에서 느껴지는 루이즈의 차가움은 비교할 수 없었다. 그의 뺨은 단단하고 매끄러웠지만, 약간 건조해 보였다. 어디에도 주름이 없었다. '우리가 대화할 때마다 그는 결코 의미 있거나 흥미로운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아. 하지만 내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 남자는 내 남편이야. 내 남편! 왜 이런 일에 화가 나지?' 그녀는 속으로 되물었다. 이번에는 레몬이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점점 커져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우며 주변의 모든 것을 흐릿하고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누가 자신을 부를 수 있을까? '조금 더, 손을 밑으로. 쭉 뻗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꽉 눌러. 레몬에이드 한잔을 위해 즙을 짜는거야.' 무언가의 달콤한 속삭임은 그녀의 생각을 뺏어갔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제노비아의 손가락이 루이즈의 목에 닿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루이즈의 여린 피부를 파고들며, 힘을 주기 시작했다. 점점 더 강하게 조여가는 손아귀는 그녀 내면 속의 커진 레몬을 쥐어 짜는 것 같았다. 멈출 수 없는 충동에 휘말린 채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살을 꽉 쥐고 비틀었다. 이상한 감각이 손을 가득 채웠다. 마치 부드러운 고무 같았고 따뜻했다. 이건 어떤 느낌일까? 좋은 걸까? 아니면 나쁜 걸까? 제노비아는 누구와도 엮여선 안 된다는 걸, 특히 루이즈 같이 단순한 사람과는 절대 엮여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제노비아는 자신이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모험을 갈망하고 있었다.

CHAPTER 6

내가 지금 멈춘다면 나중에 후회할까?
아니,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힘에 눌려 누렇게 보이는- 남편의 레몬빛 살결을 문질렀다. 마치 끓는 물에 손을 담근 듯한 따뜻함이 손바닥을 타고 퍼졌다. 나의 온몸이 짜릿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손가락을 뻗었다. 루이즈의 식은 땀 한방울이 내 손목에 떨어졌다.

내 왼손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움직였다는 것을 내가 깨닫기도 전에 침대 머리맡에 있던 작은 과일 칼이 손끝에 감겨 있었다. 손잡이를 꽉 쥐자 목을 타고 차가운 감각이 퍼졌다. 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와중에 얇고 날카로운 칼날을 남편의- 사랑하는 이의 목에 꾹 눌렀다. 루이즈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회색빛 파란 눈이 크게 뜨였고, 그 눈에는 서서히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칼날의 깊이를 따라 그의 눈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나는 칼 끝을 그의 목 깊숙이 찔러 넣었다. 단단한 근육과 피부를 제대로 가르며 칼날은 깊이 박혔다. 붉은 피가 순간적으로 터져 나왔고, 그가 숨을 쉴 때마다 피는 점점 더 강하게 뿜어져 나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공기 중에 튀어 올랐다. 뜨거운 피가 나의 얼굴과 손, 옷을 적셨다.

피비린내가 코끝을 찔렀고, 방안은 빠르게 그의 생명이 빠져나가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의 호흡이 느려지고, 차가운 침묵이 감돌자, 나의 생각과 마음은 섞이지 않은 레몬 에이드의 소용돌이가 드디어 섞여버린 것 처럼 느껴졌다. 그의 움직임이 멈추자, 니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나는 주변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아챘다. 익숙한 침실의 공기가 묘하게 달랐고, 주변의 모든 것이 어딘가 어긋난 듯했다. 그와 함께한 모든 기억이 희미해졌고, 심지어 그 자리에 서 있는 자신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몸을 떨며 천천히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내려다보았다.

CHAPTER 7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그것은 어디에 있었지?
이미 잊어버린 걸까?

나는 팔과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모든 것이 온전해 보였다. 옆집에서 이웃이 남편의 비명 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레몬은 반으로 쪼개졌다. 급하게 침대 아래에서 금고를 꺼내 코드 입력을 시작했다.

8281.
틀렸다.

8182.
틀렸다.

1828.
틀렸다.

이웃이 경찰에게 신고를 마치는 소리가 들렸다.

2818.
맞았다.

작고 회색 금속 금고에서 검은 물체 하나를 꺼냈다. 아, 이게 레모네이드의 마지막 재료였구나? 어떻게 잊었을까? 검은 물체의 바닥을 열어보니 세 개의 레몬색 금속 물체가 있었다. 나는 검은 물체를 입에 물었다. 경찰이 내 집의 문을 강제로 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내 손은 방아쇠를 놓지 않는다. 손가락이 심하게 떨린다. 땀이 흘러내린다. 총을 삼키려 하지만 목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지러움이 밀려온다.

심장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세게 뛰고 있었다.
내가 아직 살아있는 것일까?
이게 바로 그들이 말한 생각의 힘인걸까?
나는 죽을까?
내가 미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단지 상상하고 있는 건가?

이 질문들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떨며 앉아 있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단지 그 고요한 순간 속에서 내 몸은 감정의 파도에 휘말려 있었다. 손은 차갑고, 가슴은 심하게 요동쳤으며, 입 속의 총 한 자루는 마치 나를 집어삼킬 듯한 형체로 다가왔다. 현실과 기억의 경계가 흐려져 가는 이 순간, 나는 그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CHAPTER 8

갑자기 모든 것이 검게 변해버렸다. 그런 순간, 세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의 공허함 속에서 나는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빨려 들어갔다. 의식의 끝자락에서 불안감이 엄습해 오자, 나는 정신을 잃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나는 다시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피가 묻어 붉은 색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레몬나무가 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에 휩싸인 것들 뿐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에 최대한 집중에 방아쇠를 집어 당겼다. "탕-"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진 그 소리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갑작스러운 총성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심장이 찢어질 듯한 두려움과 함께, 소리의 여운이 귀를 간질였다. 그 순간, 마치 전 세계가 멈춘 듯, 주변의 소음은 모두 사라지고 총소리만이 남았다. 권총의 총성이 메아리치는 듯이 들리는 듯했다. 태양은 곧 떠오르고, 다시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 사랑은 때로 너무나 깊고 날카로워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 대가로 잃어버린 모든 것들에 대해 후회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의 그늘은 항상 밝은 햇살 아래 숨겨져 있다. 우리는 그 애정의 열기에 휩싸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 순간의 짜릿함에 취하지만, 뒤돌아보면 그 희생의 무게가 버거울 때가 많다. 결국 사랑이 남긴 상처는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고, 찬란했던 순간들의 그림자처럼 나를 괴롭히게 된다. 그렇기에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나 자신을 시험하는 여정인 것 아닐까? 시험에 실패한 당신은 어느 기분인가? '
-"나는 응시한다" - 제노비아 퀸즈, 1980년대.